그러면 잠에서 깨어 전나무 숲을 내다보는
여러 새벽들의 내 서 있는 모습과
숲 위로 날아가는 한 무리 새들이 보일거야
···
먼 서쪽 끝의 넓고도 텅 빈 하늘을
혼자 날아가는 당신
이곳의 새벽을 끌고 가는 오후 다섯시의 당신
이제 여기는 곧 날이 밝겠지만
당신은 서서히 차고 어두운 밤 속으로
터벅터벅 문을 열고 들어가겠지
- <찬 밤하늘을 멀리 날아가는 한 마리 새> 심재휘, <<중국인 맹인 안마사>>
소설도 그렇지만
시집은 특히 더 읽을 때마다 꽂히는 부분이 달라요.
어제는 오랜만에 심재휘 시인의 <<중국인 맹인 안마사>> 시집에서
그냥 읽고 싶어지는 제목의 시를 펼쳐서 읽었는데요.
위의 구절을 읽으니까
양양 여행에서 본 노을의 새들이 떠올랐어요.
그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
'당신은 서서히 차고 어두운 밤 속으로' '들어가겠'다는 구절을
상상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.
노을이 지고 깜깜한 밤이 되는 걸
새가 들어간다고 표현한 것 같은데
이런 기발한 점들이 재밌어서 시를 좋아합니다.
여행 중에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
다시 태어나면 한 번쯤 새가 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.
원래는 늘 무생물인 돌이 되겠다고 했었는데요.
저 날 만큼은 돌보다 새가 자유로워서 좋아 보였어요.
마음이 갑갑했던 시기였어서 그랬나 봐요.
사람은 직접 겪어본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는 얘기를
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어요.
더 많은 걸 느끼기 위해서 더 많은 걸 봐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.
그날 본 새들의 영상을 같이 올려요.
모두에게 편안한 저녁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!